남쪽 강가 구역

남쪽 강가 구역은 기억의 장소입니다. 해를 마주하고 굽어진 오타카로/에이본 강을 따라 추모의 벽이 111m 이어집니다.

3.6m 높이인 추모의 벽과 강 사이에는 앉을 자리와 단풍나무들이 배치된 계단식 테라스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남쪽 강가 구역은 오르내리는 강 수위에도 큰 무리가 없게 설계되었습니다.

 

도와준 분들을 기억

부상자들 중 상당수는 일반 시민들에 의해 구조되거나 도움을 받았으며, 이후 몇 개월 동안 계속해서 피해자들을 위한 헌신적인 지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액상화 토사를 치우거나 음식을 제공하고 피해 가옥을 임시적으로 보수하는 등 시민 봉사대와 학생 봉사대 같은 그룹의 체계적인 노력에 발맞춰 이웃과 친구, 가족들 또한 자발적으로 지원 활동에 나섰습니다.

지진 발생 직후 거의 600명에 이르는 소방 구급 대원들이 달려와 민방위 비상관리 본부의 지휘 아래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뉴질랜드 전역에서뿐 아니라 호주와 영국, 미국, 일본, 타이완, 중국, 싱가포르에서도 많은 전문가들이 구난 작업에 합류했습니다.

뉴질랜드 군대는 사상 최대 규모의 합동 지원 작전에 돌입하고 뉴질랜드 적십자와 구세군 등 여러 기관은 인도적 구호 활동을 벌였습니다.

추모의 벽

이름 배열

추모의 벽을 따라 40m 이어지는 대리석 패널에 2011년 2월 22일 발생한 지진으로 목숨을 잃은 분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185명 전원의 이름은 유가족들의 희망대로 표기되었습니다. 모든 이름은 영어로 되어 있으며, 비영어권 출신의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영어와 병행해 모국어(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태국어, 히브리어, 아랍어, 세르비아어, 러시아어)도 사용되었습니다.

이름 배열은 유가족들의 뜻에 따르기도 했습니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 직장 동료, 급우, 같은 국가 출신자들의 이름을 추모의 벽에 서로 가까이 배치해 달라는 요청이 많았습니다. 다른 희생자들과 특별한 연고 관계가 없는 분들에 대해서는 지진과 지진 피해의 우연성을 반영해 무작위로 이름을 배열했습니다.

다짐과 감사의 글

추모의 벽에는 지진으로 입은 피해를 설명하면서 희생자와 중상자 및 생존자들을 기억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도움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분들에게 감사하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실제 글귀는 2월 22일 이후 추가 예정)

가신 분들을 기억

2월 22일의 지진으로 목숨을 잃은 185명의 희생자는 그때 우연히 크라이스트처치에 있었거나, 아니면 평소처럼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일상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현지인이나 방문객들에게 1년 중 특히 바쁜 시기였던데다 화창한 여름철의 낮 12시 51분이라 사람들이 각자 일, 공부, 쇼핑, 친구들과 점심식사, 걷기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 예고 없이 들이닥친 지진은 아기부터 노인까지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시내와 주택가, 교외지역에서 목숨을 잃은 분들의 거의 절반이 이곳에서 일이나 학업 또는 관광을 하던 외국인이었습니다.

그날의 인명 피해는 지역사회와 뉴질랜드 전역, 외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다양한 연령층과 출신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추모의 대상인 만큼 우리가 메모리얼을 통해 함께 나누었으면 하는 것은 바로 이 포용의 정신입니다. 그날의 비극적 사건으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 그리고 삶이 송두리째 달라져버린 분들을 우리는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많은 인명 피해 외에도 220명 이상의 중상자가 크라이스트처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약 6,500명이 가벼운 상처로 처치를 받았습니다.

지역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을 기억

이 지진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과 이후 2년 동안 계속된 11,000 회 이상의 여진은 지역사회에 커다란 심리적 상처를 남겼습니다. 지진 후 약 1만 명의 주민이 크라이스트처치를 떠난 것으로 추산되며, 주민 수가 2016년까지 지진 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심대한 가옥 피해는 광역 크라이스트처치의 형태를 바꾸어버렸습니다. 많은 주택가 지역이 ‘레드 존’(중단기적으로 주거 부적합지로 판정)으로 분류되어 5천 여 채의 가옥이 철거되고, 시내는 크라이스트처치 중심지 재건 계획에 따른 주요 구역과 중심 프로젝트를 근간으로 크게 재편되었습니다.

학교, 교회, 경기장, 지역사회 시설, 문화 공간과 기타 시설물도 피해를 입어 캔터베리 주민들은 큰 불편을 겪었습니다. 

코하투 포우나무

메모리얼 입구에 놓인 코하투 포우나무(비취옥석)는 메모리얼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의미 있는 물건입니다. 테루낭가오나이타후(남섬 나이타후 부족 행정 기관)에서 기증한 것입니다. 중요한 출입로에 포우나무를 두는 것은 오랜 마오리 전통입니다. 이 돌을 만지는 행위는 방문객이 대지와 이 땅에 살다간 모든 사람들과 서로 마음을 통하는 의례입니다.

이 포우나무는 나이타후 측이 사우스 웨스트랜드 산악지대에서 채취해 공수해왔습니다.

이것은 카라라 대리석 받침돌의 좌대 위에 올려져 있습니다. 나이타후 명장 조각가인 Fayne Robinson은 샌드블라스트 기법으로 대리석 바탕돌에 세 가지 문양을 새겼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포우나무는 햇빛에 달아오르고 빗물에 씻겨 서서히 모양이 변해가겠지만 대지와 인간의 심오한 관계를 새삼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유형물로 남을 것입니다.